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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1.02 [영화와 언론] 지역없는 전국지의 ‘오만’ 뒤집어 보기 (34)

1998년작품 <에드워드 펄롱의 포토그래퍼>
















한 지역의 샌드위치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는 팩커. 사진 광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카메라 렌즈에 담습니다. 거리의 매춘부, 술집의 남성 스트리퍼, 싸우거나 실수하는 사람, 가운뎃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옆집 아줌마. 애인의 속살 등 누군가에게는 숨기고 싶은 모습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카메라를 들이대는 팩커의 셔터속도를막아낼 재간이 없습니다. 그렇게 주변 사람은 팩커의 카메라의 피사체가 됩니다. 뭔가를 위해 찍는 것도 아닙니다. 그냥 찍는 것을 좋을 뿐입니다.

시골편-찡그리고, 욕하고, 피하고, 둘만의 은밀함을 막 찍는다.


우연히 팩커가 일하는 가게를 방문한 뉴욕의 큐레이터. 가게에 걸린 팩커의 사진을 보고 감탄합니다. 팩커의 사진을 뉴욕에서 전시하게 해줍니다. 사진이 전시되고, 난리가 납니다. 언론은 "신예 사진작가가 나타났다"라고 대서특필합니다. 뉴욕 사람들의 눈에 팩커의 사진은 뉴욕에서는 볼 수 없는 ‘이색 볼거리’였기 때문입니다. '사실주의'라고 치켜세우지만, 여자 친구 쉘리나 사진 속 마을 사람은 팩커의 유명세가 달갑지만 않습니다. 사진 속에는 자신들의 숨기고 싶은 ‘삶’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유명세를 타게 된 팩커. 상황은 크게 달라집니다. 예전처럼 자연스럽게 사진을 찍을 수가 없습니다. 사진으로 스타가 됐지만, 유명해지고 난 뒤부터 ‘무언가를 위해’ 사진을 찍어야 합니다. 더는 찍을 수가 없습니다. 뉴욕사람의 입맛에 맞는 사진을 생산해야 하는 부담 때문입니다.


팩커는 뉴욕에서의 잘나가는 삶을 버리고 낙향합니다. 뉴욕에서 만난 사람들의 모습, 부자나 잘나가는 사람들의 사진을 고향의 선술집에서 전시합니다. 마을 사람은 사진을 보자 웃고 난리가 납니다. 사진 속에는 뉴욕 사람의 위선과 허영이 녹아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찍을 때는 팩커를 싫어했던 사람이 “사진 정말 잘 찍었다”라며 팩커를 칭찬합니다.

뉴욕편- 뉴욕의 색다른 모습, 뉴욕사람의 '삶'을 팩커 시각대로 담는다.


이때 뉴욕에서 알게 된 친구들이 방문해 자신의 사진을 봅니다. 위선이 담겨 있는 사진을 봅니다. 불쾌합니다. 자신들이 처음 팩커의 사진을 봤을 때 ‘이색 볼거리’와 ‘재미’로 여겼던 리얼리즘이 자신들의 ‘위선’과 크게 다르지 않은 ‘진짜 삶’이란 것을 깨우칩니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타인의 ‘삶’이 재미가 될 수도 있고, 삶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이 영화를 소개하려는 이유 바로 이점입니다. 서울지역 언론이 지역을 바라보는 시각과 비슷합니다. 이틀 전 포스팅에서 서울지역 언론이 지역을 다루는 굴절된 게이트키핑을 이야기했습니다. 서울지역 언론에 드러난 ‘지역’이 온전하지 못한 것. 애초 온전한 시각으로 볼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서울에서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면 뉴스에 대한 가치판단이 달라집니다. 서울에서는 ‘뉴스’가 되는 것이 지역에서 같은 사안이 일어나도 뉴스로 다뤄지지 않을 때가 잦습니다. 전국지라고 자부하는 서울지역 신문의 '오만'입니다.  

의미 있는 조사결과 하나를 소개해 드리면, 2009년초 전북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은 조선, 중앙, 동아일보 3개 신문의 2008년1년치 사설을 분석한 결과, 전체 사설 2,693건 가운데 지역의제를 다룬 사설은 45건으로 전체 사설의 1.5%에 그쳤습니다. 

사실상 서울지역 신문이면서 지역뉴스를 한면에 구겨놓고 전국지 행세합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지역에 살면서 나와는 거리가 먼 기사를 봅니다. 정작 자신이 살아가는 지역의 소식은 모릅니다. 서울지역 언론이 던져준 뉴스만 봐야 합니다. 중앙과 지역의 불균형은 비단 지리적, 경제적 것뿐만 아닙니다. 언론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앙중심주의 문화가 공고히 자리를 잡은 데에는 서울지역 언론도 ‘공범’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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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디어C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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