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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2.13 한 세기 전 언론인에게 배우는 탐사보도-아이다 미네르바 타벨 (30)
언론인 열전2010.12.13 05:43













평생 언론 학도를 자처한 제게는 언론인의 이름을 달고 나온 책은 늘 필독서였습니다. 먹고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학도’로서의 본분을 잊고 살았습니다. 한 출판사에서 리뷰를 부탁하는 글과 함께 한 권의 책을 전달받았습니다.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생각비행, 2010)이란 책입니다. 

처음 권유를 받고 리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가장 큰 이유는 ‘탐사보도’ 라는 키워드 때문이었습니다. 잠시나마 언론사에서 일하면서 늘 고민했던 주제였고, 언론이 살 길이라고 믿어왔던 분야였기 때문입니다. 탐사보도를 고민하면서도 정작 책에 소개된 언론인을 몰랐다는 무지보다 책장 한 장 한 장을 넘길 때마다 주인공이 보여줬던 방대한 자료조사와 끊임없는 탐구 노력에 부끄러웠습니다. 

언론인이 되려고 4년을 준비했고, 4년 6개월 언론사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언론인의 소명과 언론의 영향력이라는 부분에서 얼마나 치열한 자기성찰을 했는지 되돌아보는 계기였습니다. 또한 기자라는 직분을 갖고 있으면서 타벨이라는 사람처럼 사실을 제대로 보도하려는 노력을 했는지 반성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이 언론인이 되는 과정은 끊임없는 자기 노력이었습니다. 자기성찰의 끊임없는 반복입니다. “운 좋게도 생계를 위해 당장 언론사 일을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언론계에 진입하기까지 책임감 있게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만일 그런 용의가 있다면 언론 활동을 신성한 부르심으로 여기고 참여해야 한다”(197쪽) 

너무나 뻔한 이야기 같은 말 속에서의 핵심은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입니다. 자신의 입신양명을 위해 기사를 파는 기자, 자신의 사적이익을 위해 기사를 왜곡하는 기자, 회사의 이익을 위해 왜곡을 하는 기자, 정치적인 입장 때문에 특정 정당에 대한 비판을 일삼는 기자, 기업의 홍보기사만 써주는 기자 등 모두 우리네 언론현실입니다. 그 뻔한 이야기, 아니 기본조차 지켜지지 않는 것이 바로 21세기 우리 언론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우리네 언론사 입사방식은 언론인이 되기 위한 책임감 있게 준비한 과정을 평가해서 채용하는 것이 아니라 학벌과 공부 잘하는 인재를 뽑는 방식입니다. 소위 ‘언론고시’라는 관문입니다. 프랑스나 독일 등 일부 국가에서 언론인이 되려면 도제식 교육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밑바닥부터 익힌 뒤에야 언론인이 될 자격을 받는 셈입니다. 그에 비하면 우리의 선발방식은 책임 있는 언론인을 양성하는 것이 아니라 머리 좋은 사람을 언론인으로 양성하는 방식입니다. 채용방식이 조금만 달라져도 매체비평지에서 달라진 채용문화라면서 기사까지 나오는 실정입니다.

무엇보다 타벨이라는 인물을 알아가면서 한 세기 전 사람에게 부끄러움을 느꼈던 핵심은 글 한 편을 위해 풍부한 자료조사와 치열한 고민에서 출발한다는 점입니다. 일례로 스탠더드 오일의 트러스트를 고발하는 과정에서 그는 당시 남들이 들춰보지도 않은 의회의 각종자료와 재판자료를 활용했습니다. 

“전국 법원에서 법정 소송이 일어나 저널리스트들이 과거에는 전혀 활용하지 않았던 문서들이 쏟아져 나왔다. 법안을 뒷받침하는 문서와 소송당사자가 제출한 법정 서류를 볼 수 있었지만, 당시 대부분의 기자는 그런 자료를 찾아보려 하지 않았다. 타벨이 스탠더드 오일을 조사하면서 시도한 방법은 정보원에게 접근하기 어려운 사안을 문서 작업으로 대체하는 획기적인 접근법이었다.”(341쪽) 

타벨은 스탠더드 오일의 기사를 쓰기 위해 인쇄된 자료만 23권, 모두 1만 2000쪽 분량과 자본주의와 독점과 관련한 단행본까지 섭렵했습니다. A4 2~3장짜리의 보도자료를 보고 기사를 기자들, 저 또한 그런 기사를 썼던 입장으로써 부끄러움을 느끼는 부분입니다. 이 뿐만이 아니라 새로운 사실에 대해서도 크로스체크를 하는 등 꼼꼼한 검증작업을 거쳤습니다. 그렇게 걸러서 확인되지 않는 ‘주장’은 기사에 다루지도 않고, 중복확인을 통해 검증된 ‘사실’만을 기사로 다뤘습니다. 

(왼쪽) 아이다 미네르바 타벨, (오른쪽) 1905년 7월호 잡지에 실린 록펠러 인물 탐구 표지


인터넷에서 바이라인(기자이름 표기)을 달고 나오는 기사를 볼 때면, 한 시간에 두세 건 정도 찍어낸 기사가 참 많습니다. 기본적인 사실 확인 작업을 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한 시간에 기사를 작성해서 송고하는 언론인, 독자들이 기사를 믿지 않고 언론을 믿지 않는 이유, 바로 기본적인 사실 확인이 결여됐기 때문입니다. 어느 순간 언론에서는 ‘확인’은 없고, 한 사람의 주장을 따옴표로 처리해서 기사를 작성합니다. 애초 ‘균형적인 보도’는 사라지고 ‘주장’만 실은 기사가 넘쳐납니다. 

매클루어 매거진에 실린 스탠더드 오일 기사를 묶어 펴낸 단행본

타벨은 그렇게 충실한 자료조사와 인터뷰를 통해 거대공룡이었던 스탠더드 오일의 초법적인 독점을 터트립니다. 1902년부터 1095년까지 지속적으로 스탠더드 오일의 문제를 지적했고, 독점의 폐해를 폭로했습니다. 타벨의 기사는 5년 뒤 독점을 막는 법 제정까지 만들어 지는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충실한 자료조사와 근거를 바탕으로 한 ‘현대판 탐사보도’는 거대 재벌인 스탠더드 오일도 빠져나갈 수 없게 한 셈입니다. 


당시 다른 기자들이 외면했던 ‘사실’을 재가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 것입니다. 닉슨 대통령을 하야하게 만든 워터게이트 사건 보도, 여느 기자라면 ‘좀도둑’으로 치부할 사안이었지만, <워싱턴포스트>는 추적보도를 통해 세기의 특종을 만들어냈습니다. 같은 사안이라도 접근 하는 방식에 따라 기사의 가치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타벨과 같은 언론인, 그리고 그가 쓴 기사를 접한 적이 없던 스탠더드 오일은 처음에는 무대응으로 일관했습니다. 이후 그가 쓴 기사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알게된 뒤, 스탠더드 오일이 한 이유는 잘못을 사과하기 보다는 우호적인 언론인 그룹을 만들어 관리했습니다. 삼성의 비자금이 폭로되고, 삼성을 질타하는 여론이 있어도 언론이 삼성 기사를 쓰지 않았던 것과 비슷한 분위기였습니다.

“그들은(스탠더드 오일) 자기네 회사에 호의적이라고 알려진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저널리스트들을 무시했다. 그리고 이와 똑같은 태도로 정부 기관의 합법적 규제를 처리했다.”(394쪽) 

그럼에도 타벨은 <매클루어 매거진>을 통해 기자의 사명감을 십분 발휘했고, 그에게는 ‘최초의 현대적 탐사보도 기자’라는 명성이 붙게 된 것입니다. 한 세기가 지난 뒤에도 우리가 이 책을 접할 수 있는 것처럼 사회에 큰 ‘울림’을 주는 기사는 공장에서 찍어내듯 나오는 기사도 아니고, 따옴표로 특정인의 주장만 늘어놓는 기사가 아니라 ‘사실’을 담고 있는 보도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입증할 다양한 근거를 통해 논리적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탐사보도’이고, 우리 언론이 가야할 길입니다. 한 세기 전 ‘탐사보도’를 선보인 타벨의 보도기법을 주목해야 하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타벨의 탐사보도와 <매클루어 매거진>

언론인들이 탐사 보도의 가치를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한때 <세계일보>도 탐사보도로 언론의 새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기존 보도와 달리 기획과 주제 부분에서 성과를 거뒀습니다. 그럼에도 탐사보도가 자리를 잡지 못한 것은 언론사의 구조 문제와 연결됩니다.


타벨이 한국 언론의 언론인이었다면, 탐사보도가 빛을 발휘했을지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타벨의 탐사보도에 힘을 실어줄 수 있었던 것은 <매클루어 매거진>의 역할도 큰 기여를 했습니다. 당시 언론 가운데는 자신의 정치적인 야망을 위해 매체를 이용한 <코즈모폴리턴>의 윌리엄 랜돌프 허스트 같은 언론인도 있었습니다. 영화 <시민케인>의 모델이기도 한 허스트는 언론을 ‘도구’로만 활용했지 ‘사명감’이라고는 없었습니다.

이와 달리 <매클루어 매거진>은 당시 언론에서 하지 않았던 몇 가지 실험을 했습니다. 잡지 발행인 새뮤얼 시드니 매클루어는 남성중심의 언론환경에서 성별을 가리지 않고 인재를 등용한 점, 작가군을 하나의 브랜드로 만들어 시장에 내다 판 점(316쪽), 기사의 첫 문장에 기사를 작성한 기자의 이름을 게재해 브랜딩화 시킨 점(275쪽), 탐사보도를 적극적으로 잡지에 게재한 점 등입니다. 다른 매체와의 차별성을 부각해 새로운 보도 형태를 활성화시킨 셈입니다. 저널리스트 겸 철학자인 월터 리프먼은 “새로운 저널리즘은 공직 활동의 기준을 재계의 특정 영역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사업가들의 추문을 들춰내고, 누구나 사업에 참견할 수 있다고 여기는 분위기 탓에 사업가들은 할 말을 잃을 정도로 놀라왔다”고 <흐름과 통제>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3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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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디어C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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