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탕 탕 탕"
아수라장이 된 서울 동작구 대방동 유한양행 앞. 정체를 알 수 없는 군복차림의 군인이 버스 안에서 군경을 상대로 총격전이 났습니다. 잠시 뒤 폭발음이 들렸고, 상황이 끝났습니다. 더는 총성이 울리지 않았습니다. 망가져 버린 버스, 창문 틈 사이로 시신을 나릅니다. 

영화 같지만, 실화입니다. 39년 전 8월 23일 서울의 한복판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어떤 사연이 있었기에 처참한 죽음을 선택했을까요? 군은 당시 이들을 처음에는 '무장공비'라고 밝혔습니다. 하루 뒤 곧바로 그들은 무장공비에서 '군 특수범'으로 바뀌었습니다. 
 

역사의 한 페이지에 실미도 공작원은 ‘군 특수범’이 됐습니다. 39년 전 <경향신문>의 한 귀퉁이에는 ‘실미도 피살경비병 등 오늘 합동영결식’이란 기사가 실렸습니다. “공군 당국에 의하면 실미도에서 무장한 특수범들이 12명을 사살, 3명을 감금, 나머지 7명이 행방불명됐으나 6명은 익사시체로 1명은 생존자로 발견됐다고 밝혔다.”

당시 생존자로 발견된 사람은 서울 창천중학교 양동수 교장입니다. 양 교장은 사건 당시 목에 관통 총상을 입었으나 극적으로 살았습니다. 고인이 된 황석종 씨는 매트리스에 숨어 팔뚝이 스치는 총상을 입었지만, 생명의 위협은 없었습니다.

아군이 아군을 살해하고, 자폭을 시도한 사건. 군사정권 때라 이런 실상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국회에서 진상조사단이 꾸려졌습니다. 초선의원이었던 한 의원은 당시 이들의 신원을 공개했다는 이유로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끌려가 옥고를 치렀습니다. 이 의원은 출소한 뒤, 고문의 상처와 공포감에 정치를 재개할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실미도>의 역사적인 진실은 그렇게 묻혔습니다. 생존 기간병들은 전역할 때 적게는 25년, 많게는 30년간 “실미도 사건을 세상에 알리지 마라”는 내용의 비밀각서를 작성했고, 침묵을 강요받았습니다. 이를 발설할 때에는 처벌하겠다는 협박도 했습니다. 누구도 좀처럼 쉽게 입을 열 수 없었습니다.

사건이 발생한 지 22년이 훌쩍 지난 뒤에야 언론에 소개됐습니다. 1993년 영화 <실미도>에서 허준호 역할로 당시 소대장이었던 김이태씨가 <신동아>에 기고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됐습니다.

이후 1999년 MBC <이제는 말할 수 있다>에서 ‘실미도 특수부대’라는 제목으로 방송이 나왔습니다. 같은 해 소설가 백동호씨는 <실미도>라는 소설을 펴냈습니다.
실미도 사건이 세상이 널리 알려진 계기는 영화 <실미도>입니다. 지난 2004년 소설가 백동호씨의 원작을 영화로 제작하면서 국민 다섯 명 가운데 한 명이 알게 된 것입니다. 또 군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도 진실 찾기에 나섰고, 지난 2006년 7월 실미도사건 진상조사보고서를 펴냈습니다. 실미도  부대와 실미도 반란사건은 그렇게 하나둘씩 세상에 알려진 것입니다.

실미도 사건은 684부대에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실미도 사건으로만 기억하지만, 실제 실미도 부대는 1968년 4월에 만들어져 684부대라고 불립니다. 작전명은 ‘오소리’였습니다.

1967년 북한 124군 부대원 31명이 청와대를 급습했습니다. 잘 알려진 김신조 사건입니다. 이듬해 1월 북한 원산항 근처에서 미 해군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 미 정보정찰기(U2기) 격침사건 등이 발생합니다. 남북대치상황이 최악이었습니다. 이에 중앙정보부 김형욱 부장은 전군 사령관을 긴급 소집해 특수부대 창설을 주장합니다. 곧이어 육해공에 각각 특수부대가 설립됩니다. 실미도는 공군 예하의 특수부대인 셈입니다.


공군은 2325부대 내에 209 파견대를 창설하고, 특수부대로 장교 10명과 사병 30명을 인가됐습니다. 실제 1968년 4월 4일 실미도에서는 장교 1명, 사병 42명, 조종관 5명, 공작원 31명으로 특수임무를 위한 훈련에 돌입합니다. 부대의 운영과 감독은 중앙정보부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군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부대 예산은 1968년도까지는 중앙정보부 예산으로, 이후 해체시기까지는 국방 정보비로 편성해 정앙정보부의 승인을 받았습니다. 사실상 부대의 운영과 감독 모두 중앙정보부의 지침에 따라 관리됐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아닙니다. 깡패 출신이 많기는 합니다. 31명의 공작원 가운데 깡패는 10 여명이나 됩니다. 소매치기도 있습니다. 잡범들이 많습니다. 범죄와 거리가 먼 사람도 있습니다. 마라톤을 했던 사람도, 서커스를 했던 사람도, 무술이 뛰어난 사람도 있습니다. 공작원의 모집을 교육대장이 한 것으로 돼 있으나, 별도의 모집관을 통해 모집됐습니다. 

영화는 공작원을 사형수나 무기수인 것처럼 그렸습니다. 이에 공작원 유가족은 영화사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까지 간 법률싸움은 영화사 승소로 끝났습니다. 재판부는 영화에서 실명이 공개되지 않았고, 세부적으로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를 유죄로 인정하면 표현 및 창작의 자유가 위축될 수 있다고 판시했습니다.



영화 속에서 왜곡된 모습에 유가족이 분개한 이유는 대중은 영화를 진실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국가가 밝혀야 할 일을 영화가 대신하다 보니 이런 현상이 생긴 것입니다. 영화에서는 줄타기 중 한 명이 죽고, 무의도 강간사건으로 두 명이 죽은 것으로 묘사됐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반란사건이 나기 전까지 7명이 사망했습니다. (아래 상자 참조: 공작원들의 이름은 비실명 처리했습니다.)

                           [공작원 명단 및 사망원인]

 ○ 훈련중 익사사고로 사망        - 조00
 ○ 탈영사건으로 즉결심판 뒤사망  - 이00·신00
 ○ 하극상을 이유로 집단구타 사망 - 윤00
 ○ 무의도 강간사건으로 사망      - 황00·강00·강00(한명은 즉결심판) 
 ○ 실미도 사건 당시 교전중 사망  - 이00·전0
 ○ 유한양행 앞 버스에서 자폭 사망 -장00, 임00, 박00, 정00, 장00, 김00, 전00, 이00, 김00, 김00,정00, 박00, 이00, 장00, 김00, 심00, 박00, 윤00 등 18명. 
 ○ 군사재판 회부 뒤 사형          - 이00, 김00, 김00, 임00 등 4명




영화배우 설경구씨는 영화 속에서 ‘강인찬’입니다. 강인찬은 영화에서 하극상을 벌였고, 동료의 즉결심판에서도 적극적으로 가담했습니다. 반란사건을 벌일 당시에 교육대장에게 항의도 했습니다.

하지만, 실제 하극상을 벌인 인물은 윤00입니다. 하극상을 벌여 집단구타 뒤 사망했습니다. 동료의 즉결심판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람은 장00입니다. 교육대장의 당번병은 장00입니다. 영화의 원작인 소설과 영화적 상상력이 결합해 강인찬이란 인물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영화에서처럼 ‘사형수’도 아닙니다.

또한, 소설가 백씨는 그가 살았다고 했으나, 실미도 전우회는 생존자가 없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군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결과보고서에도 생존 공작원은 없었습니다.




상부에 올라가 실미도 공작원들의 처우를 위해 노력했던 교육대장. 그는 상부에 공작원들을 ‘부사관’으로 임용해달라고 여러 번 제안했습니다. 애초 국가가 공작원을 모집할 때 임무를 완성하면 “미군부대에 취직시켜주겠다”, “부사관으로 임용시켜주겠다”라고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교육대장은 공작원이나 기간병에게 카리스마가 넘치는 인물이었습니다. 영화배우 안성기씨의 실제 모델은 김순웅 상사였습니다. 그는 영화에서는 권총으로 자살한 것으로 나왔습니다. 실제로는 1971년 8월 23일 당번병이자 공작원인 장00이 해머로 미간이 찍힌 채 죽임을 당했습니다. 

김순웅 교육대장의 유가족 또한 영화사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진행했습니다. 직업군인에게 ‘자살’이라는 것은 치욕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재판부는 역시 영화사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김순웅 교육대장의 유족처럼 피해를 본 사람이 생긴 것입니다. 영화를 본 관객에게는 사소한 문제일 수도 있으나, 이해당사자에게는 ‘명예’가 걸린 문제입니다.




실미도 부대 공작원들은 도대체 어떤 신분일까요? 일부 공작원은 군번이 부여됐고, 장병일보에도 27명이 이병으로 기재돼 있었습니다. 사건 뒤, 인사명령지에서 이들의 흔적은 ‘삭제’됐습니다. 국가가 공작원들과 계약을 맺었음에도 지키지 않은 것입니다. 신분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고, 위험 업무에 투입하면서 소모품 취급을 한 것입니다.


처음부터 공작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용역계약’이었습니다. 하지만, 인건비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았고, 각종 수당도 중간에서 횡령됐습니다. 비밀임무도 무산됐습니다. 그렇게 계속 지내다가는 모두가 죽을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낀 것입니다. 자신들을 버려둔 국가에 대한 원망도 커졌습니다. 견디다 못한 공작원들이 기간병을 죽이면서 반란사건을 일으킨 것입니다.

기간요원을 죽인 이유에 대해 사형당하기 전 4명의 공작원은 “기간병을 죽이지 않고는 실미도를 탈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북한에 대적하려 만든 인간 병기를 국가가 버렸습니다. 그리고 아군을 죽이는 참극을 만든 것도 결국, 국가의 몫이었습니다.  

* 영화와 비교해서 다뤄볼까도 생각했습니다. 창작의 영역과 사실의 차이는 컸습니다. 일일이 열거를 하자니 한도 끝도 없을 것 같아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부분만 간략적으로 정리했습니다.
 혹시 실미도 사건과 관련해 실미도전우회와 연락하실 분은 newscsi@hanmail.net으로 연락주시면 고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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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디어CS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