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8. 23. 실미도 반란사건이 일어난지 39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공작원들은 모두 죽고 없습니다. 소수의 기간병만 살아남았습니다. 이들은 매년 현충일과 8월 23일 서울 동작동 국립묘지에 추모식을 합니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노병들은 국립묘지를 찾을 것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 쪽에서는 반란사건의 주모자란 평가를 받고 공작원 유가족들이 죽은 자의 넋을 기립니다.

2004년, <실미도> 영화가 세상이 나오면서 사람들은 ‘실화’였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국민 다섯 명 가운데 한 명은 이 영화를 봤습니다. 대다수의 국민이 알고 있는 실미도는 영화와 소설 그리고 언론의 보도가 전부였습니다. 실제 실미도 사건은 때로는 ‘과장’돼 있고, 때로는 ‘축소’돼 있습니다.

지난 2004년 동작동 국립묘지에서 열린 기간병 추모식 모습

2004년 햇병아리 기자시절, <연합뉴스>故 조계창 기자의 권유로 실미도 사건을 취재했습니다. 살아남은 ‘노병’을 만났습니다. 기사를 쓰겠다는 욕심보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알아가는 호기심 때문이었습니다. 일했던 언론사에 몇 차례 기사를 쓰기도 했습니다. 당시 ‘이슈’였던 사안이라 ‘실미도’란 키워드만 들어가도 인기 있었던 시기였습니다.

영화의 흥행이 끝나자 실미도에 대한 관심도 시들해졌습니다. 군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실미도 사건을 진상조사를 했습니다. 진상조사의 결과의 일부 내용도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후속대책이 미진근했습니다.우리들의 기억 속에서 그렇게 잊혀진 실미도, 아직도 잊지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기자를 그만두면서 저 또한 이 문제를 잊고 살았습니다. 가끔 연락이 왔습니다. 공문 작성에 대해, 법률 상담에 대해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큰 도움이 못됐습니다. 다만, 한 때 저의 취재원이었고, 취재과정에서 큰 도움을 받았던 터라 힘 닫는 데까지 도왔습니다.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만날 때마다‘노병’은 제대로된 진실을 세상에 이야기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더 남은 ‘진실’이 무엇이기에 저토록 답답해할까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많았습니다.

사진-실미도전우회 제공



연락의 끈을 놓지 않고, 한 해 두 차례 모임 때마다 갔습니다. 그리고 작년 어느 날, 노병들은 저를 실미도전우회의‘명예회원’으로 추대했습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이야기할 틈도 없었습니다. 노병들이 저를 명예회원으로 추대한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최소한 이야기를 들어준다는 것입니다. 실미도 사건에 대한 관심이 식으면서 이야기조차 들어줄 사람도 없어진 것입니다. 열띤 취재경쟁을 벌였던 언론도 더는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국가도 시큰둥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억울함을 호소하지만, 정부는 외면합니다. 법률상 도움을 받은 수 있는 것도 없습니다.‘특수임무’를 수행했음에도 관련법상 특수임수 수행자 축에도 못 낍니다. 북파를 했냐 안 했냐로만 보기 때문입니다. 공작원, 기간병 할 것없이 똑같이 먹고, 똑같이 훈련을 했어도 보상 대상도 아닙니다. 30년간 ‘비밀유지 각서’를 썼고, 침묵하라는 협박에 그렇게 살았습니다. 가족들도 몰랐습니다. 그것이 국가에 대한 충성이라고 믿었습니다. 그 대가로 일부는 세상을 등지고 떠났습니다. 노병들은 하루 둘씩 세상과 이별합니다. 실미도 부대 기간병을 통틀어봐야 20여명 정도입니다. 군에서도 끝발 없고, 쪽수에서도 밀린 ‘공군’입니다. 찬밥신세입니다.

한 노병은 훈련소 입소 3일 만에 이등병이 하사계급장을 달았습니다. 그리고 기간병으로 파견됐습니다. 남북화애 무드가 조성되자 이들은 버림받았습니다. 부대 창설을 주도한 중앙정보부도 시큰둥했습니다. 부대는 그렇게 방치됐습니다. 지급되어야 할 식품과 각종 수당은 중간에서 다 사라졌습니다.

또, 국가는 공작원과 ‘용역계약’도 제대로 지키지 않았습니다. 임무만 주고 일을 시키지도 않았습니다. 외딴섬에서 청춘을 바쳐 충성했던 공작원은 국가로부터 ‘배신’을 당했습니다. 실미도 난동사건 또는 반란사건은 국가로부터 버림받은 공작원의 분노입니다. 국가의 횡포가 만들어낸 참극입니다. 역사는 반란사건으로 기록할지라도 그들의 삶을 돌이켜보면, 국가의 잘못입니다. 기간병이나 공작원 모두가 피해잡니다.



명예회원이 된지 1년이 지났습니다. 한 것도 없습니다. 가끔 우체부를 통해 받아보는 소식과 몇 통의 통화가 전부입니다. 실미도 사건에 대한 관심이 식으면서 언론보도도 거의 없습니다. 송사중인 사건 결과보도가 고작입니다. 얼마전 <뉴데일리>를 통해 공작원들의 유골이 콘테이너 박스에 보관된 소식이 나왔습니다. 우리는 끝났다고 생각했던 사건이었지만, 누군가에는 아직도 현재 진행중인 이야기입니다.

제가 할 줄 아는 것은 글쓰기 밖에 없습니다. 블로그의 방문도 많지 않습니다. 어쩌면 글쓰기가 제가 명예회원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일지도 모릅니다. 39년 전 역사적인 사건을 기록해보려고 합니다. 완성되지 않은 이야기라도 제대로 ‘진실’을 전달해보고 싶습니다. 영화적 상상력이 만들어낸 <실미도>가 아니라 진짜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영화 속 실미도 사건만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총 4편으로 나누어 써보려고 합니다. 그동안 들었던 이야기과 제가 갖고 있는 자료를 토대로 연재를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① [실미도의 진실] 사건의 진짜 이야기

② [실미도의 진실] 잘못된 언론보도AS
③ [실미도의 진실] 실미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
④ [실미도의 진실] 사망사고 뒤, 해결해야 할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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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디어C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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