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넋두리2010.08.16 16:17




 

양치기가 될 뻔했습니다.
 
주말 내 비가 내려 처와 함께 한강 둔치로 가기로 한 약속이 위태했습니다. [바다를 원했던 아내…영화로 때운 신랑] 지난주 약속을 해놓은 터라 살짝 걱정도 됐습니다.

그런데 평소에 알던 동생 두 명이 차를 가지고 서울에 온다는 것입니다. 갑자기 왜? 이상한 반응을 보인 저를 보고 처가 재빠르게 이야기합니다. “아이 낳기 전에 같이 바다에 가자고 온다는데...” 이미 양치기 신랑의 속마음을 간파한 처가 짜놓은 완벽한 덫이었습니다. 아차 하다 뒤통수를 맞은 꼴입니다. 처가 그렇게 원했던 바다를 가게 된 것입니다.


지나가는 차의 불꼬리가 기네요.



토요일 늦은 밤, 그렇게 후배 2명과 우리 부부는 을왕리해수욕장으로 떠납니다. 밤 11시에. 인천대교를 넘어갈 무렵 비가 쏟아집니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모양입니다. 자동차 앞유리를 응시해보니 가시거리를 5m도 안 됩니다. 비상등을 켜고 거북이 경주하듯 주변 차들도 죄다 기어 다닙니다.

친절한 네비 아가씨가 없었더라면, 비가 그칠 때까지 갓길에서 황금 같은 주말을 보낼 뻔했습니다. 서울에서 60km 떨어진 을왕리해수욕장까지 2시간은 족히 걸렸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날이 바뀌었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일단 먹고 시작했습니다. 바닷가에 왔는데 바닷냄새 가득한 것을 먹자는데 5명(태아까지)이 한마음입니다. 새벽녘인데도 해수욕장의 상가들은 조명은 환합니다. 자기 식당으로 오라며 끈적한 손길을 내밉니다. 아니 손님을 끄집어 당깁니다. 펑펑 내리는 비를 맞으면서 도착했는데 신기하게도 식당에 도착하니 비가 멈춥니다.

 


한양횟집으로 들어갑니다. 이 집을 선택한 이유는 특별한 사정이 없습니다. 가게 앞 주차시설과 호객하는 아주머니의 넉살 좋은 말치레에 넘어간 것입니다. 가게 한 귀퉁이에서 자리를 잡고 조개구이를 주문했습니다. 7만 원입니다. 가격이 장난 아닙니다. 도시에서 이런 가격이었다면 곧바로 뒷걸음질칠 것이 뻔합니다.

그런데 관광지는 울며 겨자 먹기로 오케이 합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조개를 다 먹고 다시 채워달라 하면 식당 종업원의 목소리가 모깃소리처럼 조용해집니다. 그런데 한 접시 다시 채워줍니다.



곧이어 조개가 나옵니다. 불을 피우고 석쇠에 조개를 올립니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 위에서 조개 굽는 소리가 요란합니다. 끓는 소리도 가관입니다. 먹기 좋은 만큼 익었을 때 재빨리 낚아채야 하는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조개껍데기가 폭탄처럼 이리저리 튑니다.

이날 4명 모두 조개의 껍데기에 한 번씩 신고식을 치렀습니다. 다행히 태아는 엄마의 배가 감싸줘서 열외였습니다. 껍질을 까주기도 하고, 까먹기도 하고 나름 재미는 있습니다. 처는 신랑이 조개를 까줄 것이라면서 일찌감치 껍질 까기에서 열외를 자처합니다. 혼자 바가지입니다.


그릇이 엄청 큽니다. 라면 먹는 그릇의 큰형쫌 되나봅니다.


키조개, 가리비, 바지락, 굴, 대하까지 제법 많았던 어패류들이 허기진 4명의 뱃속으로 사라집니다. 주머니가 빵빵하지 않아 조개로 배를 채웠다가는 기둥뿌리 흔들립니다. 식사로 할만한 메뉴를 보니 칼국수가 있습니다. 2인분을 시켰습니다. 양이 제법 많습니다. 4인분을 시켰더라면 바지락 칼국수만으로도 충분히 끼니를 채울 수 있는 양입니다.



배가 불룩해진 우리는 이제 밤바다를 보러 나갑니다. 뱃속이 든든해서 그런지 여유만만입니다. 썰물이라 갯벌이 없는 편인 을왕리해수욕장도 제법 먼 곳까지 나가서 볼 수 있었습니다. 여기저기서 폭죽을 터트리는 젊은 친구들의 놀이가 눈요기해줍니다. 쌍을 이뤄 거니는 연인들의 모습도 영화의 한 장면 같습니다. 손톱만 한 게들은 뭍으로 상륙작전 중입니다. 혹여나 밟을까 봐 조심스럽게 발을 내딛습니다.

처의 손을 꼭 잡고 그렇게 바다를 거닐며 똥폼도 잡아봅니다. 만삭이라 “나 잡아봐라.”는 유치찬란 레퍼토리는 생략했습니다. 바다의 푸름은 못 봤지만, 파도소리와 바닷냄새는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눌러보지만, 낮이 아니라는 것이 원망스럽습니다. 환한 사진은 없고 죄다 까맣습니다. 플래시를 켜면 주변 배경이 다 죽습니다. 의도하지도 않았는데, 나중에 사진을 보니 그럭저럭 쓸만합니다. 그렇게 기다렸던 바다를 직접 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지 처는 바다에 발을 담금니다. 그리곤 배를 만지며 태아에게 이야기합니다. 처의 배를 못 본 사람이라면 정신 놓은 여자로 착각하기 딱 좋은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신이 난 모양인지 계속 떠듭니다.
 
저렇게도 좋아하는 바다를 왜 인제야 데려왔을까라는 자책이 밀려옵니다. 한편으로는 의무방어전을 치렀기에 당분간 바다 때문에 잔소리를 듣지 않아도 될 상황에 저 또한 신이 납니다. 그렇게 한 시간 동안 바다를 거닐며 추억 쌓기를 했습니다.

배도 부르고 잠시 바다도 보니 이제 슬슬 졸립니다. 휴가철이라 그런지 모텔은 이미 만원입니다. 주변을 뱅뱅 돌아도 나그네들이 머물 빈방은 없습니다. 차에서 새벽을 나고 푸른 바다를 보고 싶었지만, 3시간 넘게 멍을 때려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해수욕장에서 떨어진 곳까지 방을 수소문해봤지만, 대목은 대목인가 봅니다. 빈방이 없어 우린 그렇게 다시 서울로 돌아와야 했습니다.

3시간 정도 속성코스로 바다구경을 하고 돌아오는 길. 짧지만 여운은 강했습니다. 처도 좋았는지 어깨에 기댑니다. 운전하는 동생들을 믿고 뒷자리에서 팔자 좋게 단잠을 청했습니다. 태아도 예비아빠도 꿈나라에 갔습니다. 신이 난 예비엄마만 아직도 재잘재잘 떠듭니다. 떠는 사람 1순위는 제 처였습니다. 그리고 양치기를 살려준 두 후배 녀석이 오늘따라 참 예뻐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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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디어CS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