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사망사고/진실2010.08.16 08:34




간부를 양성하는 곳은 학사장교(ROTC), 3사관학교, 육군사관학교, 공군사관학교, 해군사관학교 등이 있습니다. 출신에 따른 차별이 없어지고 있다고는 하나, 육군은 여전히 육군사관학교 출신들이 앞섭니다. 육군사관학교 출신이 아닌 간부들은 진급을 위해 온 힘을 쏟습니다. 대위까지는 무난히 올라가도 소령, 중령 등 ‘영관급 장교’로 업그레이드 되려면, 실력 말고도 운도 따라줘야 합니다. 그런데 사고가 나면? 아무리 잘해왔어도 다른 직업을 찾아야 합니다.

1994년 말, 한 포병부대에서 사고나 났습니다. 행정병인 K 일병이 손목을 칼로 그어 자해를 시도했습니다. 화장실에 쓰러져 있던 K 일병 발견해 손목 치료 및 상담치료도 병행했습니다. 그리고 K 일병은 행정병이 아니라 포병으로 보직이 바뀝니다. K 일병이 자해를 시도했던 이유는 행정반 내에서의 구타와 폭언, 그리고 과로 등이었습니다. 또, 엄하기로 소문난 포대장의 질책도 삶의 지탱할 힘을 빼앗았던 것입니다. K 일병은 그렇게 ‘지옥’ 같은 곳에서 해방이되었습니다.




“용의 단정”, “책임감이 강함”, “모범아동” 등 초중고 생활기록부만 봐도 ‘모범생’티가 확 나는 A 병사가 있습니다. 서울에서도 유명한 강남 8학군 출신입니다. 학업성적도 뛰어난 A 병사 누가 봐도 ‘엄친아’였습니다. 그런 그가 한때 방황을 하고 삼수 끝에 한 대학에 차석입학을 합니다. 깔끔한 외모에 실력까지 뛰어났던 A 병사. 하지만, 완벽하지는 않았습니다. 체력이 약했습니다. 애초 학사장교를 지원했다가 체력문제 때문에 장교의 길을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1994년 9월 사병으로 입대했습니다.


A 병사가 자대배치를 받은 곳은 포병부대였습니다. 포병대는 포를 다뤄야 하는 곳이다 보니 머리만큼이나 체력도 좋아야 합니다. 훈련 때 드는 모의포탄만 해도 30kg 정도입니다. 체력이 약했던 A병사는 체력적으로 버티기 어려운 곳이었습니다. 동기 녀석에 비해 늘 뒤떨어졌습니다.

선임병에게도 미운털이 박힌 A 병사. 훈련 때만 되면 괴로웠습니다. 선임병의 질책보다 얼차려가 더 버티기 어려웠습니다. 모의포탄을 들고 선착순과 오리걸음, 앉았다 일어섰다는 반복하면 죽을 맛입니다. 점호 때나 훈련 때마다 통과의례인 원산폭격과 앞으로 취침 뒤로 취침은 버틸 만 했던 것입니다. 얼차려에도 버티기 어려운 체력의 A 병사였습니다. 그는 몸으로 때우는 일보다는 머리 쓰는 보직을 원했습니다. 그가 행정병이 되고 싶어했던 이유입니다.


A 병사가 포대에서 생활 한지 한 달 만에 행정반의 한 자리가 나왔습니다. K 일병의 자리였습니다. 그렇게 지휘관은 K 일병 사건을 쉬쉬하면서 그 자리를 A 병사로 대체했습니다. 대대장 선에서 해당 사건을 조치한 것입니다. 이때만 하더라도 깔끔한 일 처리처럼 보였습니다.




A 병사가 행정반에 갔을 때 ‘막내’였습니다. 온갖 허드렛일은 그의 몫입니다. 행정반 청소에서부터 점호 전 선임병들의 관물대 정리까지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게다가 행정반 내에서 그의 업무는 교육자료를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원래 간부가 자료를 만들고, 병사는 도움을 주는 일이지만 일선 부대의 교육자료는 병사의 몫이었습니다.

병사들이 만들다 보니 아무래도 전문가 같은 냄새가 나지 않습니다. 한 달 동안 업무 인수인계해도 배우기도 쉽지 않은 업무를 3일 속성코스로 배웠던 A 병사입니다. K 일병을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빨리빨리 일을 처리한 것입니다. 새 일을 시작하고 적응할 틈도 주지 않습니다. 위로는 선임병이 평가만 하는 간부들 틈바구니에서 A병사에 대한 군대라는 조직의 ‘고문’은 이렇게 시작된 것입니다.

A 병사의 일과는 아침마다 본부로 가서 <국방일보>를 가져오는 일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각종 서류 작성이 주 업무입니다. 포병들이 보기에 행정병의 이런 서류 작성 업무는 ‘편한’ 보직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A 병사가 작성하는 서류는 전투편성일지, 교육훈련예정표, 교육성과분석, 정훈교육자료, 업무일지 등입니다. 해야 할 일이 넘쳤습니다. 관련규정을 들먹이며 따져봐도 A병사의 일이 아니라 ‘간부’의 역할입니다. 일종의 관행처럼 이어진 이런 잘못된 문화가 사병을 힘들게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똑똑한 병사도 이런 업무를 3일 배우고 하면 실수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 번은 A 병사는 대형사고를 칩니다. 포대장의 검토를 받지 않고 멋대로 작성한 서류를 가지고 갔다가 회의에서 포대장이 질책받는 사건이 생깁니다. 성난 포대장은 상상도 못할 얼차려를 줍니다. 군용트럭에 매일 한 차씩 흙을 퍼담는 일을 시킵니다. 포대장은 또 과도한 훈련을 시켜 병사 두 명이 사단 의무대에 입실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체력이 약한 A 병사가 두 명 중의 한 명이었습니다.

1995년 일병 계급장을 단 A 병사. 이런 생활 속에서도 잘 버텼습니다. 자신보다 어린 선임병들에게 욕설과 구타를 당해서 꿋꿋이 버텼습니다. 그런데 간부의 질책은 버티기 어려운 결정타였습니다. 교육성과 분석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욕설을 듣고, 보직을 그만두라는 질책이  반복됐습니다.

A병사가 포대장에게 이런 질책을 받으면, 행정반 선임병들도 내림차순으로 후임병을 닦달했습니다. 군부대의 각종 창고는 ‘군기잡기’라는 명목으로 후임병들을 손봐주는 은밀한 구타의 산실이었습니다. “대학까지 나온 놈이 일 처리 하는 거 보면 병신같다”, “OO놈 만나서 뭔 지랄들을 하기에 애인이 자주 면회오느냐” 등 구타만큼이나 언어폭력도 위험수위였습니다.

머리 쓰는 행정반에서도 몸만 쓰는 선임병. 일해도 인정받지 못하는 자신의 위치. 행정반 선임병들에게 고문관 취급당하는 현실 등이 A 병사의 군 생활에 ‘위기’가 됐습니다. 그나마 일병 휴가 뒤, 애인이 된 B씨가 유일한 안식처였습니다. 자주 면회를 왔고, A 병사는 애인을 만나 부대의 답답함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애인이 자주 면회를 온다는 이유로 미운털까지 박혀 그마저도 쉽지 않았습니다.




답답한 마음을 하소연할 곳도 잃어버렸고, 이런 처지를 바꿔줄 포대장이 오히려 가해자 였습니다. 군 간부로 승진하기 위해 병사들을 닦달한 것입니다. 누구 하나 A 병사의 처지를 걱정해주고 위로해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A 병사의 눈에는 행복한 병영생활이 아니라 사람 잡는 쌍팔년도 군대였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부모님을 뵙고, 다음 날인 1995년 5월 8일 구타의 온상이었던 창고에서 숨을 거둡니다. 공교롭게도 어버이날이었습니다. 부모님 가슴에 대못을 박으면서 그는 그렇게 자신을 목숨을 끊었습니다. A 병사의 눈에는 자신의 처지를 개선할 유일한 돌파구는 죽임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간부들의 지휘권남용과 편제에도 없는 업무지시, 구타와 욕설 등과 같은 내무부조리 등 부대의 문제를 따지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부대의 잘못된 운영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지만, 전사망자분류표에 A 병사는 ‘자살’일 뿐입니다. 재조사 과정에서 이런 부대의 구악들이 밝혀지고, 추가적인 구타 가혹행위 사실이 나왔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정신과 전문의에게 A 병사의 정신과적 진단을 맡겨보니 역시나 ‘주요 우울장애’로 나왔습니다.




10여 년 넘게 자식이 “자살이 아니다”라며 항의를 했던 A 병사의 부모는 이제 노인이 되었습니다. 헌병대에서 수사하고, 국방부에서 재조사까지 했어도 결과가 바뀐 것은 없습니다. 여전히 A 병사는 ‘자살’입니다.


A 병사가 주요우울증 상태에서 ‘자살’한 것도 사실입니다. K 일병이 자해시도를 했던 상황과 똑같은 자리에 사람만 바꿔놓았던 군대의 일 처리, 그리고 위에 언급한 여러 가지 부조리도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일까요? 여전히 수사기관과 재판부는 ‘사실’만 강조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런 ‘사실’이 일어나기 전에 만연했던 군대의 ‘진실’은 지금 이 시간에도 멀쩡한 병사를 ‘관심사병’으로 만들고 있지는 않을까요? 단순히 A 병사가 심리적으로 취약한 탓일까요? 아니면 힘들어하는 병사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네주는 또는 잘못된 구조를 바꿔주지 못한 지휘관들의 잘못일까요?

14년 뒤, A병사의 부친에게 A 병사의 군 생활을 들려줬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이 힘들었던 상황도 그대로 전달했습니다.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된 부친의 눈에서는 눈물이 떨어집니다. 자신보다 먼저 간 불효자 A 병사에 대한 원망보다 생때같은 자식의 진짜 아픔을 알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원망 같았습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듣는 데 걸린 14년이란 길고 길었던 시간에 대한 한숨 같았습니다.

‘타살’만을 주장했던 A 병사의 부친은 ‘자살’이란 사실만 듣고 돌아갔습니다. 현행법상, 그리고 군대의 사망자분류표상 14년 전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똑같은 결과만 들은 셈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A 병사의 부친은 자신의 아들이 사망에 이르게 된 ‘진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더는 불효자인 A 병사를 원망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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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디어C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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