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사망사고/진실2010.08.03 00:49

[군의문사 사건 분석]

1987년 8월 28일 고령의 노모는 아들이 부대에서 사고가 있었다는 연락을 받습니다. 놀란 마음에 하루가 꼬박 걸리는 거리를 한걸음에 달려갔습니다. 부대로 달려갔지만, 아들이 근무하는 부대가 아니라 이상한 장소로 안내합니다. 부대 관계자를 따라 안내받은 곳은 영안실이었습니다. 

효심이 강했던 아들이라 애정이 더 컸습니다. 대학에 다니면서도 농사일과 집안일을 도맡아했습니다. 마을에서도 착한 아들이라며 칭찬이 자자했습니다. 생때같은 아들이었습니다. 군에 입대한 지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건강한 모습을 보여도 걱정될 판인데 자식과 생이별을 했습니다. 노모의 눈에는 피눈물이 쏟아졌습니다. 노모와 사망한 병사의 누나는 부대관계자를 잡고 따졌습니다. 왜? 죽었냐고 말입니다. 

 당시 군 수사관 "이 여자 때문에 죽었다”

  사복을 입은 그 관계자(헌병대 수사관)는 유가족에게 “이 여자 때문에 죽었다”라며 한 장의 사진을 보여줬습니다. 사진 속의 주인공은 사망한 병사의 친누나였습니다. 그 순간 유가족은 분을 삭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 말을 한 관계자를 잡고 아들을 살려내라며 소리쳤습니다. 사건이 조작됐다는 느낌을 받은 것입니다.


A병사는 전입 여드레 만에 사망했습니다. 헌병대에서 내놓은 수사결과는 “내성적인 성격으로 부대에 적응하지 못했고, 애인변심 탓에 자해 사망했다”고 밝혔습니다. 과거 사건의 자살사건 처리 방식과 똑같았습니다.
[참조- 군 자살사고 분석] 이 사건은 그렇게 묻혔습니다.

20년이 지난 뒤, 사건기록을 들췄을 때 애인변심이라고 볼만한 증거는 없었습니다. 애인으로 지목된 여자는 애인이 아닌 대학교 동기였을 뿐입니다. A병사가 애인으로 지목된 동기생에게 호감이 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둘 사이의 관계를 규정지을 수 있는 단어는 친구였습니다. 친구 이상의 의미는 없었습니다.


헌병대는 왜 애인변심을 사망의 이유로 봤을까요? 당시 같은 내무반을 썼던 병사들을 찾아내 만나봤습니다. 병사 중 한 명이 사건 전날 A병사가 여성에게 편지를 쓴 것을 봤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리고 그 편지가 애인변심의 원인으로 추정된 근거였습니다. 하지만, 이 편지 또한 수사기록에 첨부돼 있지 않았습니다. 해당 헌병대 수사관을 찾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해당 수사관은 이미 사망한 뒤였습니다. 


20년 전 병사들의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봤습니다. A병사는 여드레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재구성해봤습니다. 소대원 전체를 찾아서 재구성해보니 A병사는 동기생 12명과 한 소대로 배치됐습니다.




 일상화된 얼차려·구타 내부조리가 진짜 이유

;소대원의 3분의 1이 갑자기 늘면서 선임병들은 후임병 교육에 집중했습니다. 전입 3일째 되던 날부터 직속상관 관등성명, 선임병 서열, 군인생활수첩, 화학병과 주특기 내용(공책 한 권) 등의 암기를 강요했습니다. 경영학과를 다니다 군에 입대한 A병사는 화학주특기 교육이 어려웠습니다. 매일 같이 암기확인 작업이 이뤄지면서  원산폭격, 매미, 침상 끝에 머리박기, 철모에 머리 박기 등 얼차려를 받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이 무렵 해당 부대는 부대증축에 따라 새로운 막사를 짓는 중이었습니다. 낮에는 사역하고, 밤에는 암기와 확인작업, 그리고 얼차려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한 명이라도 암기를 못하면 동기생 전체가 구타와 얼차려를 당했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일과였습니다. 아침점호 뒤 뺑뺑이와 원산폭격은 통과의례였습니다. 또 당시 육군규정상 전입 2주가 되기 전까지는 근무를 서지 않아야지만, 소속대에서는 전입신병에게 경계근무까지 세웠습니다. 저녁점호 뒤에서는 선임병들의 TV 시청과 음주도 있었습니다. 간부들의 관리가 있었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습니다.



게다가 근시였던 A병사는 자대에 오자마자 얼차려 때문에 안경테가 부러졌습니다. 테이프로 안경을 감고 다녀야 했습니다. 자대에서의 첫 시작부터 좋지 않았습니다. A병사는 시력이 좋지 않아 내무 생활에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사망 전날 간부의 허락하에 선임병과 함께 안경을 고치러 외출을 나갔습니다. 안경 때문에 생활에 어려움이 많다고 판단해서입니다. 선임병의 허락을 얻어 노모와 대학 동기생들에게 전화했지만 아무도 받지 않았습니다. 누구에게라도 하소연하고 싶었지만, 들어줄 상대가 없었습니다. 부대에 복귀한 뒤 A병사는 말 수가 적어졌습니다. 그리고 이날 새벽 화장실에 다녀오겠다고 나간 뒤,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학교 다닐 때에는 활발한 성격이었던 A병사는 여드레 동안의 자대 생활로 내성적으로 기재됐습니다. 신병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구조에서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 당연한 얘기가 한 사람의 성격을 평가하는 다른 잣대로 적용된 것입니다.

>A병사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우울증세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기간이 짧아 어떤 정신과적 진단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었지만, 그의 다리에는 멍 자국이 남아 있었습니다. 수사기록에는 일상화된 얼차려와 구타는 없었습니다. 있지도 않은 애인이 변심한 것입니다.  [본 포스팅의 이미지의 출처는 아이클릭아트(http://www.iclickart.co.kr)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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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디어C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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