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중요한 행사 중의 하나가 백일입니다. 다경이는 생후 115일이 됐습니다. 멋들어진 백일잔치도 하지 못했습니다. “아픈 아이는 잔치를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장인어른의 말씀을 따랐습니다. 첫 아이인데, 남들 하는 만큼은 해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 아빠들은 비교적 담담하게 넘어가지만 엄마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마지못해 백일 사진을 찍었습니다. 연출되고 똑같은 사진을 싫어하는 성격이지만, 액자로 걸어둘만한 아이 사진 한 장 없는 것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게다가 아프다는 이유로 백일잔치도 못했는데 아이가 커서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을 남겨두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었습니다.


12월17일. 자고 있는 아이를 안고 동네 사진관을 찾았습니다. 멋들어진 액자에 웃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니 마음이 한결 밝아집니다. 그렇게 세 식구는 가족이 되었다는 증거를 남기려고 부산을 떨었습니다. 기쁜 마음도 잠시 가격표를 보니 입이 딱하니 벌어집니다. 금액을 본 아빠의 머리는 갈등을 합니다. 그런데 마냥 좋아하는 아내의 표정을 애써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큰맘 먹고 질렀습니다.

사진촬영이 시작됐습니다. 연거푸 들리는 셔터와 플래시 세례에 자다 놀란 다경이. 아이들의 모습을 연출하는 아가씨의 구호에 다경이가 잘 따라줍니다. 뻔한 이야기겠지만, 사진을 찍는 사진사가 “다경이 사진촬영은 참 편하다”라는 말에 절로 어깨가 으쓱해집니다. 입을 말을 내뱉었다면, 영락없는 팔불출 상황이 될 뻔 했습니다.


귀찮을법한데 플래시 세례를 즐기는 다경이. 집에서도 가끔 미소를 짓고 옹알이를 했지만, 자신도 처음 입어 보는 멋진 의상에 얼굴이 함박웃음이 가득합니다. 사진에 너무 비싼 돈을 들이는 것에 불편했던 아빠도 밝은 아이표정을 보면서 녹아버립니다. “아이가 얼굴이 작아 예쁘다”라는 사진사의 접대용 멘트에 바보 같은 아빠는 입이 귀에 걸립니다.

사진촬영에 임한 아이의 다양한 표정을 볼 때 아이가 살짝 얄밉기도 합니다. 조금만 웃어줘도 아빠와 엄마는 기뻐할 텐데, 왜 녀석은 집에서는 ‘썩소’와 미소 정도만 보여줬을까요. 초보부모라 아이를 달래고, 아이에게 웃게 만드는 기술이 부족했던 탓일까요. 얄미운 것도 잠시 이내 아이에게 미안해집니다. 아픈 아이를 키운다는 이유로 아이가 안 울면 아이를 잘 돌보는 것이라는 착각 속에 빠진 못난 아빠입니다. 새벽에 칭얼댄다고 윽박질렀던 아빠입니다.

아이도 지쳤는지 사진촬영한지 한 시간을 넘기자 슬슬 주특기를 발휘합니다. 양 손을 입에 집어넣습니다. 기인열전에라도 출현할 모양인지 자신의 주먹을 입 속에 넣기도 하고, 카메라 렌즈에대한 호기심이 떨어졌습니다.

쉽게 촬영했다고 좋아하던 사진사도 살짝 걱정합니다. 20여분을 달래고 나서야 마지막 촬영까지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에 세 식구가 모여 가족사진을 촬영했습니다. 그렇게 한 가족이라는 것을 가족관계등록법에 따른 서류가 아닌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사진을 다 찍고 집에 돌아오는 길. 사진 찍기를 잘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마터면 아이의 다양한 얼굴 모습을 볼 수 없었고, 착각으로 가득찬 아빠의 육아태도를 바꿀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며칠 뒤 아이의 사진을 담은 CD를 건네받고서는 몇날 며칠 사진만 들여다봅니다. 사진 속에는 심장병을 앓은 아이의 모습도, 아픈 아이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아이보다 먹는 양도 적고, 발육도 부진하지만 사진 속에는 너무나 사랑스러운 딸아이가 미소 짖고 있습니다. 역시나 저는 팔불출인가 봅니다. 고슴도치도 제 새끼가 예쁘다는 옛말은 그래서 시간이 지나도 자주 입에 오르는 이유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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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디어C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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