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뿔 났습니다. 지난주까지만 하더라도 농담도 곧잘 했습니다. 아내가 아이에게 건네는 말. 전형적인 고슴도치입니다. 고슴도치인 아내나 팔불출인 저나 매한가지입니다. 하지만, 이랬던 아내가 며칠 사이에 달라졌습니다. TV에 출연시켜 ‘우리 아내가 달라졌어요’라도 찍을 기세입니다. 인상을 찌푸리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육아문제 때문입니다.


미운짓(폰카라 화질이 안 좋아요)

많은 육아 선배들도 다 겪은 일입니다. 아이를 기르는 모든 집이 겪는 인생의 한 과정입니다. 우리 집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아침 7시에 나가 저녁 8시에 들어오는 초보아빠. 집에는 다경이와 초보엄마뿐입니다. 12시간 넘게 아이와 전쟁을 벌입니다. 아무리 제 새끼라 하더라도 자꾸 칭얼대면 짜증이 납니다.

 그런데 초보아빠는 직장을 옮긴 것이 보름을 갓 넘겼습니다. 집에 들어오면 씻고 저녁만 먹어도 밤 9시를 넘깁니다. 잠깐 아이를 보고 12시면 잠을 잡니다. 새벽에 아이가 울면 초보엄마 몫입니다. 잠이 부쩍 적어진 초보엄마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초보아빠는 슈퍼맨이었습니다. 좋아하는 블로그도 버리고, 새벽녘까지 다경이를 봤습니다. 출퇴근 왕복 3시간. 하루 3∼4시간 선잠을 잤습니다. 그렇게 2주 정도를 보내니 초보아빠는 휴일에는 잠만 잡니다. 시계 한 바퀴는 돌리는 것은 예삿일이 됐습니다. 잠귀도 어둡습니다. 생체리듬을 유지하기 위해 초보아빠는 이번 주 들어 육아에 소홀에 졌습니다. 갑자기 할 일이 부쩍 늘어난 초보엄마 바로 인상이 구겨집니다. 맘 편히 잠도 못 잡니다. 인상을 쓰지 말라고 이야기해도 소용없습니다. 잠이 부족하고 몸이 힘든데 초보아빠의 말이 귀는 들릴 일이 없습니다.

이쁜 짓

미안합니다. 안쓰럽습니다. 아내의 수고를 덜어주고 싶은데 새벽녘까지 매일 아이를 지켜보는 일 쉽지 않습니다. 궁색한 변명입니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나마 회사에 나가는 날이면 핑계라도 댈 수 있습니다. 쉬는 날이면 다크써클이 짙어진 아내의 눈매가 매서워집니다. 한소리 듣기 딱 좋은 상황입니다. 아이 돌보는 일 뭐가 어려우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제 한 달이 다 돼가는 첫 아이를 키우는 초보아빠는 어렵습니다. 다경이가 울면 달랠 수 있는 필살기를 다 익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안 먹힙니다. 녀석은 고수입니다. 초보아빠를 길들입니다. 따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부모 마음입니다.

요즘 잠투정인지 목이 쉴 정도로 발악할 때가 있습니다. 보듬어 주고, 토닥여 줘도 약발 안 듣습니다. 며칠 초보아빠의 심장 소리가 낯선지 울음을 멈추지 않습니다. 화가 납니다. 이럴 때 초보엄마는 인상을 쓰며 아이를 달랩니다. 뻘쭘해집니다. 초보엄마의 익숙한 심장박동소리, 따스한 체온을 느낀 다경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조용해집니다. 신기합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또다시 아이는 초보엄마 품으로 갑니다.


28일 아침 출근하면서 아내를 안아줍니다. 늘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부쩍 미안해집니다. 전날 밤부터 새벽녘까지 다경이 녀석이 투정을 부렸습니다. 잠을 못 자고 다경이를 봤던 아내. 누가 봐도 피로에 지친 모습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초보아빠 아내 무서운 줄도 모르고 잠만 퍼질러 잤습니다. 모기 우는소리처럼“미안해”라고 면피성 말을 합니다. 초보엄마는 “직장 때문에 그런 것인데 뭐...”라고 이야기합니다. 안 끝났습니다.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 됩니다. “주말에는 다경이 봐줄 텐데”라고 회심의 일격을 합니다. 변명도 반박할 이유도 없습니다.  혼자 바가지(=독박: 흔히 고스톱에서 쓰는 용어로 우리말로 바꿔 쓸 수 있는 표현인 우리말로 바꿔쓰면 이렇게 표현합니다.) 이번 주말은 영락없이 다경이를 위해 풀 서비스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아내에 대한 우호도라도 올라갈 상황입니다.


이쁜 짓

출근길에 지옥철(아침 미어터지는 지하철을 이렇게 부릅니다.)에서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같이 아이 만들어놓고, 초보엄마에게 너무나 큰 짐을 지운 것이 아닌지. 못내 미안해집니다. 같이 해야한다는 생각은 하는데 몸이 말썽입니다. 앞으로 계속 슈퍼맨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아내도 슈퍼우먼도 아닙니다. 나약한 인간들입니다.

당장 글이 발행될 날(29일)은 다경이가 종합병원에 갑니다. 심장에서 잡음 소리가 들렸기 때문입니다. 초보아빠는 출근해야 합니다. 초보엄마 혼자서 걱정을 가득 안고 병원에 가야 합니다. 직장 옮긴 지 얼마 안 돼 회사에는 이야기도 못 꺼냈습니다. 전직에 이직이라 회삿일도 배워야 할 것도 많습니다. 잘해야 합니다. 세 식구 밥줄이 제게 달렸습니다.

자꾸만 다경이와 관련된 일을 아내에게만 짐 지울 수는 없습니다. 딱히 해법도 없습니다. 가뜩이나 저녁에 세미나까지 있습니다. 예상 귀가 시간은 밤 11시입니다. 미안해서 아내 얼굴을 편히 볼 수 없습니다. 아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요. 좋은 남편으로 이미지 관리했다가 이글로 못된 남편이 될지도 모릅니다. 사랑한다는 말로는 면피성 말밖에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웃분들의 댓글 성원을 감히 청해봅니다. 뿔이 난 아내의 마음을 누그러트릴 만병통치약 같은 댓글 응원을 말입니다. 이웃님들 믿겠습니다. 방문도 뜸한 저이지만, 이번만큼은 블로거 이웃님과 독자님들만 믿습니다. 참 염치없는 블로거입니다. 잘 압니다. 염치없다는 것을. 그래도 블로거를 꼼꼼히 보는 아내입니다. 오늘은 새벽까지 말뚝섰습니다. 내일 회사에서 졸지나 않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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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디어C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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